<한 편의 시>




섬진강 첫 매화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 이원규

 


백운산 햇살이 저의 흰 붓을 들어
에헤라 노아라
소학정의 백년 매화나무를 지목하자

저요, 저요
허리춤의 잔가지 하나가 번쩍 손을 들었다
해마다 맨 처음
보살도 아니 부처도 아닌 것이
시무외인(施無畏印)의 오른손을 들었다

아직은 소한대한의 뼛골 시린데
어쩌자고 대체 어쩌라고
검지 손톱의 꽃망울 처녀 하나
빨간 내복 윗도리를 벗기 시작했다

데미샘에서 망덕포구 오백삼십 리
언 몸 풀던 섬진강이 침을 꼴깍 삼켰다

--졸시집 <달빛을 깨물다> 중에서

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


섬진강 첫 매화 소식 1신




성탄절에 섬진강 홍매화 세 송이가 피었다.
소학정 청매화는 꽃망울을 부풀리며
희고 보드라운 혀를 내밀까 말까 ...
때를 기다리고 있다.


다사마을 길옆의 그 집 마당에는
주인장이 경운기에 실어온 장작을 내린다.
얼었다 녹으며 피어서인지
안쓰럽게도 분홍 꽃빛이 희끄무레하다.
사진으로 담기에는 아직 무리다.

작년에는 동짓날, 재작년에는 1월8일에 피었다.
아직은 날씨에 따라 큰 변화가 있겠지만,
올해 소학정매는 일주일 뒤쯤 피기 시작할 것이다.
물론 섬진강 첫 매화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.
한 달 뒤면 우리집 토종매화들이 피어나고
다시 한 달이 더 지나면
온 동네 과수원 매화들이 만발할 것이다.

겨울의 채 3분의 1도 지나지 않았는데
빛 좋고 양명한 땅 광양시 다압면은
한겨울에 문득 봄날을 내보인다.
농부와 어부들의 삶이 그러하듯이
한 계절 미리 산다는 것,
겨울에 봄을 살고, 봄에 여름을,
여름에 가을을 사는 일이
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일이다.
모터사이클을 타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.
언제나 두 계절을 대비해야 한다.
낮에 밤 기온을 생각해 복장을 갖추고,
맑은 날에 미리 비옷을 챙겨야 한다.

세상은 여전히 엄동설한이지만,
석 달 열흘 동안 저 꽃빛과 매향(梅香)을
어찌 모실까 궁리하는 성탄절이 따스하다.
우리 집 세 평 텃밭도 이미 봄이다.
푸른 배추는 그대로 자라고
발아래 분홍빛 광대나물 꽃과 보랏빛 큰개불알풀꽃이
저 먼저 피어 섬진강 첫 매화를 부른다.  




+ Recent posts